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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송년회를 보내고 돌아보면서
이규정 소설가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과 망년회를 하겠다는 나섰더니 제법이나 싸늘한 바람이 스쳐가고 있었다. 얼마나 추운지 곧바로 얼어붙는 귓불을 움켜쥐면서 들어서는 길목을 막아서는 소녀가 한번만 도와 달라고 사정했다. 무엇을 도와 달라는 것이냐고 다그치며 바라보는 소녀의 눈망울에는 적잖은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얼마나 추운지 부들부들 떨리는 몸뚱이가 또한 곧바로 쓰러질 듯이 비틀거렸다.
얼핏 보아서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의 집은 청주시내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시골에서 왔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찾아가는 식당에서 거절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 학생보다 먼저 쫓아오는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아르바이트를 하고서야 돌아가겠다고 생각했던 학생은 집으로 돌아가는 차비가 없어서 막아섰던 것이다.
나는 느닷없이 막아서면서 차비를 빌려달라고 사정하는 소녀가 마땅찮다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이전에도 일상생활의 직업처럼 차비를 빌려달라는 사람들이 적잖았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소녀에게 어느 식당에서 차비도 없이 돌려보냈느냐고 다그쳤다. 마주보이는 식당을 원망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는 소녀가 차비는커녕 쌍그렇게 쏘아보며 다그치는 사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돌아섰다고 말했다.
한동안이나 사정하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불쌍하게 느껴지는 소녀가 빌려달라는 돈은 2천원이었다. 하지만 나는 2만원을 내밀면서 빨리 돌아가라고 말했다. 제법이나 추운 날씨에 버스를 타고 돌아간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반기듯이 받아드는 소녀가 만원이면 충분하다고 말해면서 만원은 돌려주겠다고 내밀었다. 추운데 택시를 타고 돌아가라고 다그치면서 돌려보내는 소녀의 뒷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의 뒷모습이 사라지고서야 돌아서는 길목에서 마주보는 지인이 누구냐고 말했다. 차비를 빌려달라는 소녀와 주고받았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더니 곧바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슬그머니 들어서는 식당에서도 바보처럼 당했다는 다그침이 멈추지 않았다. 맞장구치면서 키득거리는 사람들을 마주보고 주저앉아서야 바보처럼 당했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정말로 얼마나 어수룩한지 한두 번 당하는 일이 아니었다. 다시는 속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여전히 당하는 내가 한심스럽다는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식탁에 주저앉는 음식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떠들썩하게 술잔을 주고받는 이야기에 차비를 주었던 소녀는 까맣게 잊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야 생각나는 소녀에게 속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깟 차비 2천원을 빌려달라는 소녀가 앵벌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또한 속았다는 생각보다 믿고 싶다는 생각에서야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쩌지도 못하는 버릇은 여전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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