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 삶의 작은 이야기

이규정 소설가 /자전거와 통닭.

 

 

 

 

 

 

 

   

 

    

                              자전거와 통닭

 

 

                                                                                 이규정 소설가

 

 

 

 

어느 사이에 1월의 마지막 주말. 토요일 수원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노닥거리다가 늦은 저녁에서야 나섰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현관에서 반기는 아들 녀석이 통닭이 먹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저녁을 먹은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으니 시장기가 돌았던 모양이었다. 무슨 녀석이 통닭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한숨을 몰아쉬며 방으로 들어섰다. 그동안에 전화기를 잡아드는 아내는 통닭을 주문하고 있었다.

 

 

 

 

아들 녀석은 어려서부터 좋아하는 고기가 통닭과 자반고등어였다. 입맛이 짧아서인지 다른 육식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어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자반고등어는 좋아한다. 군대를 다녀오면 조금이라도 낳아지려니 하였더니 아직도 무엇보다 좋아하는 고기가 통닭과 자반고등어다. 오늘도 하필이면 통닭이 먹고 싶다는 아들이 마땅찮다는 한숨을 몰아쉬는데 지난 시절이 떠올랐다. 아들을 임신하는 아내가 입덧을 하던 시절이 또렷하게 스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아들을 임신하던 시절에는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쌀독에 쌀이 떨어지는 날이 많기도 했다. 연탄을 또한 외상으로 가져다가 밥을 해먹기도 했다. 입덧을 하는 아내에게 먹고 싶다는 것을 사다준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던 시절이었다. 오죽하면 이웃집에서 얻어먹는 자반고등어가 고작이었다. 아무리 먹고 싶어도 먹어보지 못하는 아내의 마음고생이 여간 아니었다. 입덧으로 먹고 싶다는 것을 구해주지 못하는 나또한 적잖은 마음고생을 하였다.

 

 

 

 

 

하루는 자전거를 타고서 퇴근하는데 통닭냄새가 콧등에 주저앉아다. 자전거에 내리면서 휘둘러보는 길목에 통닭집이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통닭집을 머쓱하게 쳐다보면서 통닭이 먹고 싶다던 아내의 모습이 스쳐가고 있었다. 통닭을 사다주고 싶었지만 통닭은커녕 과일하나를 사다주는 형편이 못 되었다. 외상값이 적잖은 구멍가게를 피해서 다니는 신세가 처량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머쓱하게 쳐다보는 통닭집에서는 구수한 통닭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선뜻 돌아서지 못하는 길목에서 주춤거리고 있었다. 통닭집과 자전거를 번갈아 보면서 바라보며 망설이는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버스비를 아끼려고 구입한 자전거를 팔면 입덧을 하는 아내에게 통닭이라도 먹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안이나 망설이다가 자전거를 팔아서 잡아드는 통닭이 반갑기도 했다. 집으로 들어섰더니 통닭을 반기는 아내의 입술이 귓불에 달라붙었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처음으로 남편노릇을 했다는 마음이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내는 통닭을 먹고서야 자전거를 팔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괜스레 자전거를 팔았다고 적잖은 원망을 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출퇴근하는 버스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자전거와 바꿔먹은 통닭을 어쩌겠는가. 서너 해가 지나고서야 딸을 임신하는 아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기도 했다. 조금이나마 형편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서인지 무슨 음식이든 좋아하는 딸이 기특하기도 하다.

 

 

 

 

 

아내는 아직도 통닭과 자반고등어를 좋아하는 아들이 마땅찮다고 투덜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아들이 먹고 싶다면 군말을 하지 않고 사다주는 것은 자기의 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에서도 그 시절이 스쳐가면서 안타까운 한숨이 멈추지 않는 자전거와 통닭. 어느새 적잖은 세월이 흐르면서 애틋하게 느껴지는 추억이 아쉽기도 하다.

 

 

 

 

 

33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