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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타임즈 무심천 / 자랑스러운 친구에게

자랑스러운 친구에게
무심천
2009년 02월 18일 (수) 충청타임즈 webmaster@cctimes.kr
   
 
   
 
이 규 정 <소설가>

어제는 모처럼 만난 지인들과 저녁을 함께 먹겠다고 들어서는 식당에 주저앉았더니, 옆자리에서 누군가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듣다가, 그 사람이 졸업식에서 어쩌고 하는 말에서 화들짝 놀라 손바닥으로 이마를 두드렸다. 아차! 하면서 날짜를 더듬어보니 벌써 2월 14일이었다.

일반적으로 2월이면 학교마다 졸업식을 한다. 초등학교 친구가 또한 어렵사리 공부하던 대학의 졸업식을 깜박 잊었다가 이제야 생각난 것이다. 자랑스러운 그 친구의 졸업식에 꽃다발이라도 전해주어야겠다고 작심하고 있었는데, 자칫하다가 언제 졸업을 하였는지도 모르고 지나칠 뻔하였다. 집에 돌아와서야 알아보았더니 그 친구의 졸업식은 지나가지 않았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내가 오십 중반의 나이에 그 친구 또한 초등학교 동창으로 동갑내기다. 이제는 어린 아이들이 할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괜스레 서글퍼지기도 한다. 친구들에게 걸핏하면 날아드는 것이 자녀들을 결혼시킨다는 청첩장이다. 결혼식장에서 만나는 친구들 또한 하나같이 희끗희끗한 머리에 벗겨진 이마가 넓기도 하다. 일찌감치 자녀들을 결혼시킨 친구들은 벌써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어서는 손자 손녀의 자랑으로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도 못한다.

나와 그 친구 또한 자식들이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만약에 조금만 일찍이 결혼을 시켰으면 손자손녀를 보았을지도 모르는데, 전혀 뜻밖에도 그 친구가 대학공부를 시작했다는 것을 지난여름에 알았다. 그날도 모처럼 만나는 친구들과 주고받는 이야기에서야 낌새를 알아차렸는데, 그 친구는 끝까지 숨기려고 부정하는 고개를 흔들었다. 친구들과 내가 작심하고 달려들어서야 J대학 졸업반이라고 대답하는 그 친구가 쑥스러운 고개를 돌려버렸다.

우리가 자라던 시절에는 누구나 어려운 환경에서 대학교란 쉽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시골에서는 제법이나 큰 마을에서도 대학생이란 한두 사람에 불과했다. 나도 그렇지만 그 친구 또한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대학이란 언감생심 꿈조차 못 꾸었다. 부모님의 농사일이나 겨우 거들다가 결혼하는 남자의 아내로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자식이나 키워오던 아녀자였다.

이제는 시부모님이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자식들 또한 이제야 마치는 대학공부에 짬나는 여유가 생겼는지 자신이 대학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자기 딴에는 뒤늦은 대학공부가 어지간히 쑥스러웠는지 까맣게 숨기면서 우연찮게 알았던 것이다. 지금도 학교를 들먹이는 말에서는 얼굴부터 발갛게 달아올라서 입조차 뻥긋 못하는 그 친구가 졸업을 앞두고 있다.

누가 무엇을 하든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손쉽게 이루어지는 것 또한 성취하는 보람이 미약하다. 어렵고 힘들게 얻은 결과에서야 가슴이 뿌듯한 보람에 성취감을 맛보기도 하는 것이다. 누구든 오십의 중반에는 생각조차 쉽지도 않은 공부를 시작하는 용기, 자식이나 다름없는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슬기로움, 이제는 침침한 눈으로 깨알처럼 빼곡한 책장과 씨름하는 노력에 누구든 누구에게든 자랑하고 싶은 친구였다.

나는 물론이고 친구들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그 친구의 졸업식을 앞두고 내가 깜빡하고 있었다니, 그 또한 나의 불찰에서 미안한 마음에 축하하는 꽃다발을 이 글에서도 한 아름 보내고 싶다. 자랑스러운 그 친구에게, 이제야 작은 소망을 이루어내는 대학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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