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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타임즈 무심천/ 어머님의 모습을 닮아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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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모습을 닮아가면서
무심천
2011년 02월 08일 (화) 충청타임즈 webmaster@cctimes.kr
   
 
   
 
이규정 <소설가>

지난해 연말부터 혹독한 추위가 신년에 들어서도 여전했다. 어느 사이에 1월을 보내면서도 혹독한 추위는 조금이라도 멈추려는 기척조차 없다. 구정명절이 가까워서야 조금이라도 풀리는 날씨가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극성부리는 구제역 때문에 달갑지 않은 구정명절이 되고 말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구정명절을 보내겠다고 나섰다.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도착했더니 형님과 동생들이 떠들썩하게 반겼다. 조카들이 또한 떠들썩하게 반기는 인사를 받고서야 어머님의 방으로 들어섰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두 손을 움켜잡는 어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어머니를 슬그머니 끌어안는 나또한 안타깝게 바라보는 눈망울이 시큼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구정에 떡국을 먹으면서 한 살의 나이가 더해지는 어머님은 여든여덟. 세월에는 누구도 어쩌지도 못하는 노환으로 고생을 하시는 어머님의 자식사랑은 여전하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님은 얼굴을 쓰다듬어 주시는 것이 고작이다.

이제는 잔주름이 깊어지는 자식들이 어지간히 안타까우신 모양이다. 한동안이나 얼굴을 쓰다듬으며 안타깝게 바라보는 어머님의 눈망울에 적잖은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모처럼 만나는 식구들과 주고받는 이야기가 떠들썩하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어머님과 나란히 누워서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울산에서 올라온 동생이 또한 어머님과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새벽이 되어서야 늦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귓불을 휘둘렀다.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더니 방바닥에 쓰러지신 어머니가 일어나며 싱긋이 웃으셨다. 괜스레 잠을 깨웠다고 미안해서 웃으시는 어머님이 화장실에 다녀오다 넘어지신 것이다.

이전에는 어머님과 누워서는 어머니의 젖을 먹겠다고 젖무덤으로 달려들었다. 징그럽다고 뿌리치는 어머님을 시집을 보내겠다고 놀리면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놀리기는커녕 가느다란 숨결조차 가빠지는 어머니가 안타깝다.

하지만 아무리 안타까워도 자식들이 어쩌지 못하는 노환이다. 아흔이 가까워서도 치매에 걸리지 않고 우리를 알아보시는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님을 모시는 형님과 형수님이 또한 예순을 훌쩍 넘기셨다. 형님이 출근하시면 어머님과 형수님이 남아 있는 집이다. 어쩌다 형수님이 잠깐이라도 집을 비우시면 혼자서 거동하시는 어머님이 쓰러지시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누워서 살 수도 없는 어머님을 모시는 형님과 형수님은 하루에도 몇 번씩 화들짝 놀라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침이 되어서는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주고받느라 분주하다. 어머님은 일가친척은 물론 주위에서도 연세가 많으신 어른이다. 자연스레 세배를 드리겠다고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저녁때가 되어서도 멈추지 않았다. 세배를 받는 것도 힘겨운 어머니가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시는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또다시 하룻저녁을 보내는 어머니의 가느다란 숨소리가 무엇보다 안타까웠다.

언제나 어머님을 뵙고서 돌아오는 발길은 무겁기만 하다. 배웅을 하겠다고 창문으로 얼굴을 내미는 어머니가 손바닥을 흔드시는 모습이 사라지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이나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어머님의 모습이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안타까워도 자식으로서 어쩌지도 못하는 노환이라고 자위하는 것 또한 이전이나 다름없는 버릇이다.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세월을 탓하지 못하는 나또한 어머님의 모습을 닮아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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