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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작은 이야기

사흘이 못가는 자아반성

 

 

 

 

 

                                                        사흘이 못가는 자아반성

 

 

 

봄꽃보다 아름다웠던 우리 어머니

여덟의 자식을 낳았지만 절반이 겨우 살았습니다. 풀죽을 먹었던 시절에 낳았던 자식들이 굶어서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보리밥이라도 먹으면서야 그나마 살아주던 자식에 넷이었습니다. 하지만 참나무처럼 무뚝뚝한 사내를 넷이나 키우면서 적잖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물려준 것이 없어서 미안하다.

빈곤한 집안에서도 그럭저럭 자라주는 자식들이 대견스러웠습니다. 결혼하는 자식들이 중년이 되어서도 아무것도 물려준 것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그러십니다. 어느 사이에 여든 일곱을 넘기는 얼굴에 검버섯이 피어서도 자식들을 걱정하는 한숨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안부의 전화조차 뜸하던 자식. 명절에야 쫓아가서 하찮은 효도를 하겠다고 큰절을 올립니다.

 

 

 

이제는 큰절을 받는 것조차 힘겨워진 어머니.

어머니는 명절에서야 찾아오는 아들이 뭐가 좋다고 싱글거리는 웃음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주보는 아들이 또한 싱글거리고 웃지만 속내에서는 가슴시린 설움이 울컥 치솟았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적잖은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망울을 감추려고 어머니에 젖무덤에 달려들며 끅끅거리는 신음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아들과 하룻저녁을 보내는 어머니.

밤새도록 잠들은 아들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눈길이 멈추지 않습니다. 손바닥으로 쓰다듬는 아들의 얼굴에도 적잖은 주름살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침이 되어서도 못 다한 사랑의 손길이 아쉽기만 합니다. 하지만 하룻저녁을 보내고 떠나는 아들을 붙잡지도 못하고 바라보는 눈망울에 적잖은 눈물 꽃이 흘러내립니다.

 

 

 

누구도 거슬리지 못하는 세월

언제나 노모를 뵙고 돌아오는 아들은 가슴시린 앞가슴을 두드립니다. 어쩌다 만나는 어머니가 이제는 검불처럼 으스러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어쩌지도 못하는 노환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어머님을 모시는 형님과 형수님이 또한 어느 사이에 회갑을 넘기면서 이전 같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사흘이 못가는 자아반성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동안의 불효를 반성하는 한숨이 멈추지 않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는 슬그머니 잊어버리는 반성이 삼일을 못 가고 말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반복하는 버릇이 적잖은 나이가 되어서도 고쳐지지 않습니다. 먹고 살기도 바쁘다는 핑계가 또한 이전이나 다름없습니다. 오늘도 집으로 돌아오면서 자책하는 불효. 하지만  불효를 멈추겠다는 자아반성의 다짐이 사흘이나 가려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