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규 정 <소설가>
우리나라 3대 명절의 하나가 추석이다. 음력으로 8월15일로 중추절, 또는 한가위라고도 부르는 추석의 유래는 고대사회의 풍년제에 기원했으며 일종의 추수감사절이다. 한해농사를 수확하는 시기로서, 누구든 조상님께 햇곡식으로 만든 음식과 햇과일로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오기도 한다. 그래서 또한 생활터전을 달리하여 떠났던 사람들도 다녀가는 전통으로, 우리나라 국민의 75%가 다녀가는 추석이야말로 최대의 명절이나 다름없다.
추석의 인심이 또한 얼마나 후했는지, 서로 나누고 함께 즐기면서 소외받는 사람이 없었다. 오죽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했다. 추석만큼은 누구라도 나누어먹고 함께 즐기는 전통놀이가 많기도 했다. 농악은 물론 달맞이를 비롯하여 씨름, 거북놀이, 줄다리기, 닭쌈, 윷놀이, 강강술래 등으로 다양했다. 내가 자라던 고향에도 마찬가지다. 집집마다 돌아가는 농악놀이에 덩실덩실 춤추고, 농구기를 상품으로 내놓고서 씨름은 물론 줄다리기와 닭싸움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연극을 하였는데, 그것이 또한 전통적인 행사로서 마을의 총각들이 각기의 배역을 맡아 출연하는 연극이었다.
연극이라야 솔직히 어설프고 엉성했다. 극본이 또한 장화홍련전, 이수일과 심순애, 금도끼와 은도끼, 콩쥐팥쥐와 같은 고전동화를 나름대로 각색하는 연극이다. 할아버지의 배역에서는 머리를 하얀 물감으로 덧칠하는 것은 물론이고 옥수수의 수염으로 콧수염과 턱수염을 달았다. 아낙의 배역에는 화장품을 덧칠하는 얼굴에 치마저고리를 훔쳐 입었다. 엉성한 분장에서도 어두침침한 무대에서 누군지조차 감쪽같이 몰라보는 연극이라, 그 시절에 어디서든 그만한 구경거리가 없었다.
지금에서 생각해도 그 시절에 재미있는 일화가 많기도 하다. 콩쥐팥쥐의 연극에서였다. 팥쥐 어머니의 행패를 보다 못한 아주머니가 올라서는 무대에서 팥쥐 어머니의 따귀를 후려 갈겼다. 그런데 따귀를 사정없이 후려치고서야 보았더니, 팥쥐 어머니의 배역이 바로 자기가 애지중지 키워놓은 외아들이다. 장화홍련전에서였다. 그나마 연기를 잘한다고 새신랑에게 홍련이란 역할을 맡겼더니, 홍련이 귀신이 되어서 튀어나오는 무대에서 기절하고 놀라서 까무러치는 사람이 바로 갓 시집온 새신랑의 새색시였다.
지금에서야 어렴풋한 추억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모두 이야기하자면 한 권의 책으로도 모자란다. 나또한 스무 살쯤이나 되어서는 선배들의 엄명으로 연극배우가 되기도 했다. 흑백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부터 시들해지던 연극이 어느 순간에 슬그머니 멈추더니, 이제는 민속놀이조차 구경하기 어렵다. 어쩌다 특별한 행사에서야 맛보기로 보여주는 민속놀이를 구경하는데, 지금으로서는 그렇게라도 명맥을 유지하는 전통놀이가 천만다행이다.
올해의 추석은 지난 일요일이었다. 올해도 예년이나 다름없는 민족대이동으로 고속도로는 물론 국도와 지방도로가 정체되고 열차표와 고속버스표가 매진되었다.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오는 것 또한 이전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아직도 추석차례는 고사하고 하루의 끼니조차 걱정하는 빈곤으로 소외받는 사람이 제법이나 많다. 예전에 보릿고개를 넘기던 시절에서 추석만큼은 소외받는 사람이 없었는데, 지금은 함께 즐기는 것은 고사하고 '한가위만 같아라'든 인심조차 이전만 못하다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