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규 정 소설가
청주공장에 근무하던 내가 오창 테크노파크에서 근무하게 된 것은 지난해 봄부터다. 청주의 하복대에서는 청주역과 옥산을 거쳐서야 출퇴근을 한다. 그런데 출퇴근하다가 지나치는 옥산에서 얼핏 떠오르는 그녀가 궁금해지면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 지금에서 만나고 싶은 그녀를 처음 알았던 것은 내가 20살이 되어서다. 그 시절에는 수동식전화조차 관공서에 부잣집에서나 가능했다. 일상적인 통신으로 편지와 엽서나 주고받던 시절에서 청춘남녀가 사귀는 것 또한 편지가 고작이다. 그런데 누구를 어떻게 꼬드겼는지 그녀의 주소만 달랑 알아가지고 보내는 편지에서 2년이 넘도록 주고받았다.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속여서도 모르고 주고받는 편지다. 솔직히 그 시절에 이름은 물론 성별까지 속이는 편지로 장난치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2년이 넘도록 주고받는 편지에 가장 궁금한 것은 그녀의 얼굴이다. 그녀가 또한 내 얼굴이 어지간히 궁금했는지 사진을 부쳐달라는 편지가 날아들었다. 반기듯이 사진을 부쳐주는 편지에 그녀의 사진을 부쳐달라고 부탁했다. 곧바로 날아드는 답장을 뜯어보았더니, 사진은 없었지만 청주로 놀러오라는 내용에서 얼마나 기뻤는지 가슴조차 두근거렸다.
곧바로 가겠다는 답장을 보내고서는 며칠을 준비했다. 목욕탕에, 이발소를 다녀오는 것은 물론이고 어머니 몰래 마른고추까지 팔았다. 이른 새벽부터 쫓아나가 제천역에서 충북선 열차를 올라타고 청주역에서 내렸다. 그 시절에 청주역은 우암동 어딘가에 있었는데, 약속장소가 또한 청주역 앞의 길목다방이었다. 다방을 찾아가면서도 가슴 설렘에 떨리는 아래위턱이 달그락거리더니, 머쓱하게 들어서는 다방에 주저앉아서도 바짓가랑이가 사시나무 떨리듯 바들거렸다.
한참이나 주저앉았어도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다. 낙심하는 한숨에 보기 좋게 당했다고 절망하면서다. 한쪽 모퉁이에 주저앉은 그녀가 자기 무릎을 보다가 나를 힐끔 돌아보고, 나를 돌아보다가 무릎보기를 한 시간이 넘도록 반복했다. 나또한 그 모습을 훔쳐보면서도, 그녀가 무릎 위에 사진과 나를 확인하고 있었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와서야 알았다. 그녀가 한 시간이 넘도록 확인하고서야 쫓아와서 만났는데, 그렇게 만난 그녀가 구경시켜 주겠다고 데려갔던 곳이 지금으로서는 어디였는지 어림조차 못하겠다.
지금은 어딘지조차 모르는 곳에서 점심을 겨우 함께 먹고는 청주역으로 돌아왔다. 제천역으로 돌아오는 열차에서도 그녀를 만났다는 설렘은 여전했다. 그런데 한 번 만나고는 차츰 멀어지는 편지가 두 달이 못 되어서 끊겨버렸다. 사진은 그럴 듯해서 만나고는 만정이 떨어졌던 모양이다. 한동안이나 답장 없는 편지를 보내다가 어쩌지 못하고 멈추었는데, 그 시절이 벌써 30년이 훌쩍 넘어버린 추억의 한 토막이다.
지금은 얼굴은커녕 주고받았던 편지의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었었다. 그런데 오창으로 출퇴근하면서 지나치는 옥산에서 그 시절이 얼핏 떠올랐던 것은, 지금에서도 그녀의 주소만큼은 옥산면 00리 000번지를 또렷하게 기억하여서다. 이제야 그 시절을 버릇처럼 떠올리며 꼭 한번 만나고 싶은 그녀. 혹이라도 정말로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한번 보고는 만정이 떨어졌느냐고 따져보고, 이제라도 내 사진을 돌려달라고 어깃장이라도 부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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