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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타임즈 무심천/ 나의 뒷모습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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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뒷모습을 돌아보며
무심천
2008년 11월 19일 (수) 충청타임즈 webmaster@cctimes.kr
   
 
   
 
이 규 정 <소설가>

나는 지천명의 나이에서야 문학공부를 하겠다고 깝죽거리기 시작했다. 전문지식은커녕 기본조차 모르다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어설프고 섣부른 글이다. 섣부른 글이나마 발표하면서 초대받는 문학행사에 참석하고 싶지만, 아직도 빠듯한 직장생활에 얽매이다보니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지난달에서야 원고청탁과 함께 초청하는 문학행사에 참석했더니, 모두가 낯선 얼굴이라 쑥스러워서 고개조차 못 들고는 한쪽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았다.

처음에는 시낭송에서 수필낭송으로 이어졌다. 나는 여전히 구석모퉁이에 숨은 듯이 주저앉아서 감상하는데 갑자기 내 이름을 들먹였다. 무슨 일인가 하고 멀쑥하게 일어났더니, 자작소설의 일부라도 낭송하라는 엄명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나로서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바짓가랑이가 후들후들 떨렸다. 더군다나 여류시인들이 많았던 자리에 박수까지 치면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얼굴조차 홍당무가 되었다

아무리 부끄러워도 주저앉지 못하는 자리다. 이번에 출간하는 신작소설의 줄거리를 들려주는 것으로 얼렁뚱땅 넘겼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이나 남아있는 부끄러움에 문학행사도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구나 하고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서다. 버릇처럼 열어보는 이메일에 낯선 사람의 편지가 한 통 날아들었다. 누군가 하고 클릭하여 보았더니 문학행사 진행자의 한 사람이었다. 지난번 문학행사의 동영상을 첨부파일로 전송하니 열어보라는 내용이었다.

나로서는 어색하고 쑥스럽던 자리였지만 반기면서 열어보았더니, 곧바로 뒤통수가 허여멀건 사내가 스쳐가는 화면에서 누구였던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얼굴로 돌아오는 화면에 그 사내는 바로 나였고, 나는 그제야 내 뒤통수에 허여멀건 운동장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이전부터 앞이마가 고속도로처럼 벗겨졌다는 것은 알아차렸지만, 뒷머리가 빠지면서 뒤통수조차 허여멀겋게 되리라고는 꿈에서조차 생각 못했다.

오늘에서야 허여멀건 뒤통수에 내 삶을 돌아보니, 하룻저녁 꿈꾸듯이 지나간 세월이 반백년을 훌쩍 넘었다. 내 딴에는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남아있는 것은 부끄러운 흔적뿐이다. 어느 것 하나라도 잘하는 것이 없다보니 당연하다. 지금도 내 딴에는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노력하지만 생각처럼 만만한 세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나의 무능력에서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할 것도 없으니 자신을 책망하는 한숨뿐이다.

이제서 나의 무능력을 탓하고 지난 세월을 아무리 후회한들 소용없는 일이다. 앞으로라도 어떻게든 후회하는 삶은 사양하고 싶지만,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삶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도 힘겨운 실정이다. 그렇다고 주저앉지 못하고 여전히 앞만을 바라보고 허우적거리다가, 어느 날 문득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에서야 화들짝 놀라면서 후회하는 한숨을 내뱉을 것이다. 오늘처럼 나조차 믿기지 못하도록 변해버린 나의 뒷모습에 설마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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