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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정 <소설가> |
한동안이나 어지간히 극성부리던 무더위가 이제야 주춤거리고 물러섰다.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제법이나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스쳐간다. 제법이나 맑아진 하늘이 또한 높아졌다. 어느 사이에 출퇴근하는 길목에는 활짝 핀 코스모스가 가을을 재촉하며 산들거렸다. 고추잠자리가 여유롭게 날아다니는 들판에도 가을맞이에 분주한 모습이다.
요즘에도 가을을 상징하는 코스모스와 고추잠자리를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옛날처럼 어디서나 흔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한적한 시골길에서야 가을을 손짓하며 재촉하는 코스모스와 고추잠자리를 구경할 수가 있다. 오늘도 출근하는 옥산에서야 코스모스와 고추잠자리를 보고서는 지난시절이 떠올랐다. 개울가에서 벌거벗고 물잠자리를 쫓아다니던 추억이 추억이 스쳐가고 있었다.
물잠자리는 개울 숲에서 생식하는 곤충이다. 지금은 언제 보았는지 기억조차 없지만 내가 자라던 고향의 개울에서는 흔하게 보이는 것이 물잠자리였다. 친구들과 걸핏하면 뛰어드는 개울에서 미역을 감는 것은 물론 물잠자리를 잡겠다고 쫓아다녔다. 가끔은 서로 많이 잡겠다고 쫓아다니는 친구들과 물잠자리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쯤이나 되어서다. 그날도 친구들과 뛰어드는 개울에서 물잠자리를 잡겠다고 쫓아다녔다. 하지만 친구들은 서너 마리를 잡았는데 나는 한 마리도 못 잡았다. 얼마나 약이 올랐는지 미역을 감겠다고 주저앉는 웅덩이에서도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데 때마침 물잠자리 하나가 웅덩이로 날아들었다. 반기듯이 벌떡 일어나서 그놈의 물잠자리를 잡겠다고 쫓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물잠자리는 남 못지않게 잡았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움켜쥐는 물잠자리가 번번이 빠져나갔다. 차라리 멀찌감치 날아가면 그나마 체념이라도 하겠는데 ?構?보이는 풀숲에 주저앉아서 약을 올렸다. 한 마리도 못 잡아서 적잖은 자존심에 오기가 발동했다. 어떻게든 그놈의 물잠자리라도 잡겠다고 쫓아다니는데 갑자기 까르르 하고 숨넘어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내가 웃음소리를 듣고서야 화들짝 놀라서 올려다보는 개울둑에는 적잖은 계집아이들이 배꼽을 움켜쥐고 허리까지 비틀면서 깔깔거리고 있었다. 벌거숭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리는 사타구니를 움켜쥐고 미역을 감았던 웅덩이로 내려섰다, 그런데 유별난 계집아이가 '뭐가 보인다.'라고 키득거리고 놀리면서 뒤따라왔다.
나는 그렇게 뒤따라오는 계집아이가 얼마나 얄미웠는지, 곧바로 사타구니를 움켜쥐고 쫓아가서 붙잡는 계집아이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하지만 계집아이가 또한 여간 독종이 아니었다. 독수리 발톱이나 다름없는 손톱으로 달려드는 계집아이가 벌거숭이 몸뚱이를 얼마나 할퀴었는지 한동안이나 적잖은 고생을 하였다.
사람은 태어나서 꿈을 먹고 자라고 추억을 먹으면서 늙는다고 한다. 나도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가 적잖다는 생각에서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금에서 애틋한 추억으로 되돌아보는 그리움이 작지는 않다. 지난주부터 야유회를 하겠다는 동창들이 반드시 참석하라는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아직까지 여의치 않은 직장생활에 쫓기면서도 반기듯이 쫓아가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아직도 꿈을 먹고 자라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소망을 버리지 못하는 그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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