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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타임즈 무심천/ 엄마의 정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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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정원에서
무심천
2010년 08월 23일 (월) 충청타임즈 webmaster@cctimes.kr
   
 
   
 
이규정 소설가

내가 어쩌다 찾아가는 엄마는 현관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겅중겅중 뛰어나오셨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함지박처럼 벌어지는 입술을 귓불에 걸치시고는 싱글거렸다. 그런데 이번에 찾아가는 엄마가 꼼짝 못하고 누워있는 방바닥에서 반기셨다. 이제는 얼마나 쇠약해지셨는지 화장실에 가다가도 넘어지는 엄마가 팔목을 다치셨다는 것을 형수님에게 들어서야 알아차렸다. 안타까운 한숨을 몰아쉬며 바라보는 엄마의 정원에는 엄마가 자식처럼 키우는 화초들이 반기듯이 산들거리고 있었다.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창틀에 매달린 베란다에 적잖은 화초들을 키우고 있었다. 손바닥처럼 자그마한 정원에 벤자민, 관음죽 행운목. 선인장은 몰론 이름조차 모르는 화초들이 제법이나 많았다. 어쩌다가 찾아가면 반기듯이 산들거리는 화초들이 제법이나 아름다운 꽃망울을 터트리기도 했다.

오늘따라 머쓱하게 바라보는 화초들이 이전과 달리 시들하게 보였다. 이상하다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쫓아가서 훑어보는 화초들의 잎사귀에는 적잖은 먼지들이 주저앉았다.

어디가 아파서인지 누렇게 변색되는 화초들의 잎사귀들이 어머니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사이에 팔순 중반을 훌쩍 넘기시는 엄마가 화초를 돌본다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엄마가 무엇 때문에 적잖은 화초를 키웠는지 생각하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안부의 전화조차 뜸해지는 자식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자식들을 바라보듯이 키우는 화초라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시들하게 말라가는 화초들이 오늘에서야 남다르게 느껴졌다. 안타까운 한숨을 몰아쉬며 보듬어주는 화초들은 여전히 어머니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만 4형제를 키우던 엄마가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딸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기는 참나무토막처럼 무뚝뚝한 사내들만 키우다 보니 살가운 딸이 부럽기도 하셨을 것이다. 더군다나 출가하고는 안부의 전화조차 뜸해지는 자식들이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객지에서 고생하는 자식들을 불러들이지도 못하는 엄마가 얼마나 적적했으면 자식 보듯이 키우는 화초들이 시들하게 말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어머니를 업어주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나도 엄마를 업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정원을 나서면서야 불쑥 떠올라서 쫓아가는 엄마를 업겠다고 넙죽한 등짝을 불쑥 내밀었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를 업는 것조차 어림없는 짓이었다. 어느 사이에 고목나무의 삭정이처럼 변해버린 엄마는 자식들에게 업히지도 못할 정도로 쇠약해지셨기 때문이다.

효도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한다. 하찮은 안부전화에도 화들짝 반기는 얼굴이 함박꽃처럼 벌어지는 엄마가 이제는 어지간한 큰소리에도 알아듣지 못하는 고개를 기웃거리셨다. 가끔은 함께 모시고 살아가는 형님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가 안타까웠지만 어쩌지도 못하는 노환이 원망스러웠다. 누구라도 거슬리지 못하는 세월을 아무리 탓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나 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적잖은 불효를 자책하는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도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나는 불효가 어지간히 많기도 하다. 오죽하면 엄마의 정원에 자라는 화초들보다 못하다고 자책하는 앞가슴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것도 작심삼일에 멈추는 버릇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이제라도 효도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생각조차도 며칠이 지나서는 까맣게 잊어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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