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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작은 이야기

이규정 소설가/ 초등학생으로 돌아가는 송학초등인의 밤

 

 

 

 

 

 

 

 

 

 

 

 

 

 

 

 

 

 

 

 

                       초등학생으로 돌아가는 송학초등인의 밤.

 

 

                                                                                   이규정(李揆貞)

 

 

 올해도 어느 사이에 12월에 접어들면서부터 바빠지기 시작했다. 한해를 마무리하겠다는 행사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주말에는 이런저런 모임의 행사가 겹치기도 한다. 나또한 예외가 아니라서 분주하게 바빠지는 주말. 이런저런 행사가 많았지만 초등인의 밤에 참석하겠다고 나섰다. 무엇이 그렇게 바뿐지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난 지가 한참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고향을 떠난 지도 어느 사이에 40년이란 세월이 가까워진다. 객지에서 어렵게 살아가다보니 고향을 찾아가기란 쉽지가 않다. 명절이나 애경사에서나 쫓아가는 고향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동창들은 그렇게라도 만난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가끔이나마 동문회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참석해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직장생활에 쫓기다보니, 초등학교 동문회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참석한다는 것 또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문들을 만나겠다고 쫓아가는 고향이 멀기도 하다. 2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하는 행사장에는 제법이나 많은 선후배들이 북적거렸다. 반기듯이 주고받는 인사를 건네는 동안에도 도착하는 선후배 동문들이 제법이나 많았다. 각기 살아가기 바쁘다보니. 오랜만에 만나는 동문들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한참이 지나서도 떠들썩하게 주고받는 인사가 멈추지 않고 있었다.

 

 

 초등학교 총동문회에서 주관하는 행사가 시작되면서야 조용해지는 초등인의 밤. 국민의례와 함께 진행되는 행사를 보고서야 축하하여 주겠다고 참석하는 외빈들이 제법이나 많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학교연역의 내용에서는 안타까운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졸업생이 겨우 15명.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학생들이 작아지는 모교가 무척이나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국민(國民)학교라고 했다. 그 시절에는 얼마나 어려웠는지 초등학고를 다니지 못하던 사람도 작지는 않았다. 월사금과 교과서의 책값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어린아이가 걸어서 다니던 초등학교가 제법이나 멀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의 열기만큼은 남달랐다. 어떻게든 공부시키겠다는 부모님들의 희생에서야 초등학교라도 다니는 것이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에서 생각해도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 그때는 학생은 많아도 학교와 교실이 부족했다.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누어서 공부하는 학생이 1000명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난해 졸업생이 15명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주위에 있던 2개의 학교를 합병하고서야 졸업하는 학생의 고작 열다섯이었다. 자칫하다가는 언제 어느 때 폐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시골에서는 학생이 없어서 폐교한다는 학교가 또한 제법이나 많아서 안타까운 한숨이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제1부의 행사가 끝나면서 제2부의 행사가 진행되었다. 초대악단의 연주와 기수별 노래자랑, 경품추천으로 이어지는 행사에는 선후배가 없었다. 모두가 하나로 뭉쳐지는 행사장에는 요란스러운 박수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90의 연세에도 참석하신 선배를 극진히 모시고, 손자와 자식이나 다름없는 후배를 배려하는 것 또한 동방예의지국으로 칭송받는 우리나라의 전통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선후배 동문들과 초등학생으로 돌아가는 초등인의 밤. 한동안이나 즐겁게 보내는 행사가 끝났지만 곧바로 헤어진다는 것이 아쉬웠다.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이 동창들과 우르르 몰려가는 커피숍에서 마주보고 주저앉았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자정이 훌쩍 넘어서야 슬그머니 일어서는 커피숍을 나섰다.

 

 한동안이나 주저앉았던 커피숍을 나와서도 무엇이 그렇게 아쉬웠는지, 다음을 기약하는 인사가 한동안이나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아쉬워도 어쩌지 못하고 돌아서는 승용차에 주저앉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승용차에서는 안타깝다는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어느 사이에 적잖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짧은 생을 마감하고 떠난 동창들이 제법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초등학생이 줄어드는 학교가 또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괜스런 걱정이 또한 멈추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