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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타임즈 무심천/ 누드크로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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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 크로키에서
무심천
2010년 11월 29일 (월) 충청타임즈 webmaster@cctimes.kr
   
 
   
 
이규정 소설가

지난봄 종합예술제가 열리는 행사장에서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며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시화전을 감상하고 돌아서는 미술전시장 입구에 제법이나 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제법이나 넓은 공간에 무대처럼 꾸며놓고 둘러앉은 사람들은 얼핏 보아서도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머뭇거리는데 남녀 한 쌍이 무대에 올라서고 있었다. 머쓱하게 쳐다보며 미술 강연을 한다고 생각했다. 무대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자의 인사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운을 벗는 사람은 누드모델이었다. 그들의 알몸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화들짝 놀라는 눈망울이 휘둥그레 벌어졌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발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구경하고 있었다.

요즘에 흔하게 보이는 것이 누드사진이나 누드동영상이다. 하지만 누드크로키에서 누드모델을 직접 본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다. 더군다나 여자 분들과 함께 전시장을 둘러보는 자리였다. 남자모델이 가운을 벗는 순간 나의 알몸을 들켜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서 화끈거렸던 것이다. 오죽하면 옆에서 머쓱하게 쳐다보던 지인이 참다운 예술인은 예술적인 감성으로 감상하라고 놀리기도 했다.

나또한 아무리 부끄러워도 원초적인 본능은 어쩌지도 못하는 모양이다. 적잖은 호기심으로 훔쳐보는 누드모델은 마네킹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잔잔한 음악과 함께 바뀌는 남녀모델의 감성에 놀라고 있었다. 모션이 바뀌는 순간마다 감상하는 느낌이 다르고 그들의 감성이 또한 색다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예술적인 감성이나 예술인이라는 자부심이 없었다면 누구라도 못하는 것이 누드모델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누드모델이 벗어던진 가운을 걸치고서야 돌아서는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한동안이나 지인들에게 참다운 예술인이 되기는 틀렸다는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어느 사이에 여섯 달이 지나면서 까맣게 잊었던 이야기다. 그런데 오늘 문학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고속버스정류장에서 스마트폰으로 누드사진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이어폰을 귀에다 걸치고 키득거리는 사람은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고속버스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북적거리는 대기실. 적잖은 사람들이 주저앉은 의자에서 스마트폰으로 누두사진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마땅찮았다. 이어폰으로 아무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누두사진을 어린 아이도 훔쳐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옆자리에 주저앉았던 아주머니가 쌍그렇게 쏘아보며 일어섰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슬그머니 돌아서는 아주머니가 마땅찮다는 한숨을 몰아쉬었지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내는 아무런 반응조차 없었다.

공공장소에서 누구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공중도덕이다. 요즘에 흔해지는 스마트폰으로 누드사진이나 누드동영상을 본다는 것 또한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나또한 마땅찮다는 듯이 쏘아보고 돌아서는 의자에서 누드모델이 떠올랐다. 우연찮게 누드크로키에서 보았던 남자모델의 모습이 스쳐가면서 괜스레 부끄러워지는 얼굴. 나또한 한참이나 모자라는 지성으로 자아반성을 한다지만 참다운 예술인이 되기는 틀려버린 사람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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