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충청타임즈에서

충청타임즈/ 이규정 소설가/ 애틋하게 스쳐가는 추억들

 

 

 

 

 

 

 

 

'충청타임즈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뉴스 > 칼럼 > 生의 한가운데
-->
       
애틋하게 스쳐가는 추억들
生의 한가운데
2012년 06월 18일 (월) 이규정 <소설가> webmaster@cctimes.kr

 

 

 

   
 
   
 

                                                                              이규정 <소설가>

 

 

 


사람이나 동물은 물론 식물들도 무엇보다 필요한 휴식이다. 밤에는 잠을 자는 것 또한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휴면이나 다름없다. 그러고 보면 일상생활에 쫓기는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서 밤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야로 교대하는 직장인들은 낮과 밤이 바뀌기도 한다. 나 또한 주야로 교대하는 직장에서 밤 낮이 따로없다. 이전이나 다름없이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집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버릇처럼 깊은 잠속에 빠져들면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꿈속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우연찮게 꾸어지는 꿈속에서 나무를 하러가고 있었다. 지게목발을 두드리면서 올라서는 뒷산에서 버릇처럼 튀어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지게를 내려놓고 휘둘러보는 산자락에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복사꽃이 활짝 피었다. 나무를 하면서 내려다보는 마을에도 활짝 핀 복사꽃이 날 보라는 듯이 손짓하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거기에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는 초가지붕에서 활짝 핀 하얀 박꽃이 또한 복사꽃을 시샘하듯이 산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이나 젖어드는 꿈속에 깨어났더니 12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침대에 일어서면서 아쉽다는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애틋하게 느껴지는 꿈속에서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서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꿈속에서의 고향은 복사꽃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마을이다. 복사꽃이 많아서 지명이 또한 도화(桃花)라고 한다. 봄이면 집집마다 바깥마당의 울타리는 물론 밭둑이나 논둑에도 활짝 핀 복사꽃이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거기에 박꽃이 아름다운 피었던 초가지붕에 매달린 굴뚝에서는 밥 짓는 냄새가 또한 구수하게 느껴지는 마을이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서도 복사꽃과 함께 애틋한 추억으로 스쳐가는 지게는 필수적인 농기구의 하나였다. 등짐장수들 또한 필수적인 장사도구가 지게였다. 경운기는커녕 리어카 없었던 시절에 지게가 유일한 운반도구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나 또한 어린 나이에도 물지게를 짊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샘물이 집에서도 한참이나 멀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쇠풀을 베겠다고 짊어지는 지게가 익숙해졌다. 차츰 자라면서 소꿉친구나 다름없는 지게에 또한 애틋한 추억들이 많기도 하다.지게 목발이나 두드리던 내가 고향을 떠난 것은 19살이 되어서였다. 농사를 짓고 싶어도 농사지을 땅이 없었기 때문에 무작정 고향을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멀어지는 지게를 잃어버리고 살았다.

 

 

 

지난달에 박물관에서 우연찮게 보았던 지게를 보고서 애틋한 추억들이 스쳐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꿈속에서 지게와 보내던 시절에 복사꽃과 박꽃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사이에 40년이 가까워지는 세월과 함께 변해버린 고향에서 사라진 것은 복사꽃만이 아니다. 개울가에 수양버들은 물론 아카시아 꽃들과 함께 어우러지던 개울둑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요즘에서도 가끔이나마 찾아가는 고향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낯설게 느껴지는 고향이 마땅찮다는 한숨이 멈추지 않는다. 조금씩 변하던 고향에서도 이제는 예전의 모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애틋한 추억이라도 남아있는 것이 천만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는 애틋한 추억들조차 가물거리기 시작하는 것 또한 반백이 넘어섰다는 증표나 다름없다. 아무리 아쉬움이 많아도 세월이 흐르면 망각이라는 것이 찾아오는 것 또한 어쩌지도 못하는 자연의 순리이다.

 

 

 

 

아무리 안타까워도 누구도 거스르지 못하는 세월에 잊어지는 추억들. 꿈속에서나마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만 마음대로 꾸어지는 꿈이 아니다. 이제라도 어린 시절의 애틋한 추억들을 담아놓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글들이 또한 쉽지가 않아서 걱정이다. 그렇다고 더 이상 머뭇거리지 못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각이라는 놈이 그나마 남은 추억들마저 날려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야 시작하는 글들이 또한 제자리걸음이라 안타까운 한숨이 멈추지 앉는다.


 

이규정 <소설가>의 다른기사 보기  
ⓒ 충청타임즈(http://www.cctimes.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이규정 소설가/ 충청타임즈/적잖은 나이에도 철없는 사내의 반성  (0) 2012.10.21
충청타임즈/이규정소설가/ 엄마가 겸손으로 가르치던 교훈  (0) 2012.08.29
충청타임즈/ 한국소헐가 협회 봄철 세미나에서  (0) 2012.05.24
충청타임즈/ 청주문인협회/ 문학인 초청 강연 및 토론회에서   (0) 2012.04.20
충청타임즈 생의 한가운데서/ 이규정 소설가/ 재수가 없는 손님  (0) 2012.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