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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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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12월23일 19시12분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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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한 이야기 <수필>
누나에게
이 규 정
● 약 력

◇충북 제천 출생
◇한맥 문학 소설 신인상,

   문학저널 소설 신인상,

  근로자문화예술제 대통령상 등 수상.
◇청주문인협회 회원
◇단편소설집 ‘서른다섯의 봄’, 하얀나비. 무녀

 장편소설 ‘구름에 숨은 햇살’

                꽃핀등 출간. 
 

누나! 오늘에서야 누나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생각하니 누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어림해서 계산해도 30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렸네. 어느 사이에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는지 하룻저녁의 꿈속처럼 지나버렸어. 지금에서야 되돌아보니 지난 몇 년은 누나가 있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고 살았지 뭐야. 미안해. 무엇이 그렇게 바쁘다고 누나조차 잊고 살았는지 나조차 모르겠어.

 

내가 누나를 처음 알았던 것은 열다섯 살인가 되어서였지. 그때는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 어머니가 10년이 넘어서야 친정에 다녀오셨어. 그리고 친정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말해서야 나에게도 이종사촌 누나와 여동생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 아들만 4형제로 자라던 나로서는 누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곧바로 편지를 보냈어. 남동생이 없었던 누나가 또한 남동생이 생겨서 좋다고 날아드는 답장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누나와 편지를 그렇게 주고받기 시작하면서 만난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어. 그때만 해도 어려운 살림에 차비가 만만치 않았고 교통편이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편지라도 주고받는 것이 여간 즐겁지 않았어. 내가 요즘에서야 섣부른 소설을 쓰겠다고 매달리는 것 또한 누나와 주고받는 편지에 적잖은 공부가 되었기 때문이야.

 

누나를 처음 만난 것은 외가의 친척 결혼식장에서였어. 누나가 보고 싶어서 외가의 결혼식장에 쫓아가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에 매달리며 졸라서야 따라가서 만났지. 얼굴도 모르고 편지만 주고받다가 처음으로 만나는 누나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누나가 또한 어지간히 반기면서 좋아하던 모습이 지금에서도 눈앞에 선하네. 하지만 결혼식에 얼마나 걸리겠어. 반갑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결혼식이 끝나고 말았지 뭐야. 거기에 차시간이 또한 여의치 못하다보니 곧바로 돌아오면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되돌아보는 고개가 아프더군.

 

외가의 애경사에서나 만나는 누나와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변함이 없었지. 몇 년을 그렇게 보내면서 우리도 20살이 훌쩍 넘어서고 있었어. 친정식구가 그리웠던 어머니가 중신하는 누나는 고향선배와 결혼을 하였고, 나는 빈농에서 이탈하려고 떠나는 고향에서 낯선 타향살이를 시작하게 되었지.
홀연 단신으로 떠나는 고향에서 반겨주는 곳이 없었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과 부산에서 적잖은 고생을 하다가 울산으로 갔어. 울산에서도 적잖은 고생을 견디면서야 결혼하는 아내와 자리를 잡았지. 하지만 명절에서야 쫓아가는 고향에서 하룻저녁을 보내고 돌아오기에도 바빴어. 오죽하면 어지간히 반겨주는 누나와 매형을 만나서도 안부 인사를 나누는 것이 고작이었지.


나보다 세 살이 많은 매형과는 형제처럼 자랐어. 매형의 부모님, 누나의 시부모님이 또한 아저씨와 아주머니라고 부르면서 자랐으니 안부 인사를 드리는 것이 당연한 도리였지. 그래서 또한 안부인사라도 드리겠다고 쫓아가서 누나와 매형을 만나기도 했어. 그런데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그렇게 만나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어. 고향이 가깝다는 청주로 올라와서야 여유가 생겼는지 찾아가는 누나를 만났지. 하지만 그것조차도 안부 인사를 나누고 돌아온 것이 고작이었어.


어머님과 형님이 시내로 이사를 하면서부터 명절에도 누나의 얼굴의 못 보고 돌아오는 날이 많았어. 이제야 염치없는 변명이지만 오가는 시간을 하루씩 보내는 명절휴가에 누나를 찾아가서 만난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누나에게 인사조차 못하고 돌아왔다는 것을 잘했다는 것은 아니야. 미안해. 명절에도 얼굴조차 내밀지 많았던 동생이 어지간히 얄밉고 원망스러웠겠지만 용서해줘.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커가는 자식들을 보면 안다더니 정말 그러네. 어느 사이에 누나는 큰딸을 결혼시키고 작은딸의 청첩장을 보냈었지. 당연하게 쫓아가는 결혼식장에서 누나를 만났어. 하지만 누나와 매형은 얼마나 바빴는지 고개를 까딱 숙이는 인사가 고작이었지. 그런데 누나를 그렇게 만난 것이 마지막이 되다니? 누나의 비보를 듣는 순간 도저히 믿기지 못하는 충격을 감당할 수가 없었어. 설마하고 쫓아갔더니 어이없게도 나를 반겨주는 것은 누나의 영정사진이더군.


누나의 영정사진을 보고서야 얼굴도 모르는 동생의 편지를 받고 좋아하던 모습. 지독한 산골의 외딴집에서 살았던 누나가 편지를 부치겠다고 한 시간이나 걸어서야 우체국으로 들어서는 모습. 어쩌다 쫓아가는 고향에서도 반기는 누나가 객지에서 고생한다는 걱정으로 몰아쉬던 한숨소리에서야 후회하며 앞가슴을 두드렸지.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바쁘다고 그동안 누나에게 무관심하게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이야.


동생이란 녀석이 얼마나 못났으면 가끔이나마 병원에 다녔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았어. 누나도 그렇지. 어디가 아프면 아프다는 소식이라도 전해주면 얼마나 좋아. 그렇다고 원망조차 못하는 것은 누나가 원하지 않았던 길을 갑자기 떠났기 때문이야. 하지만 누나!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길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외롭다는 생각은 않았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매형과 조카들은 물론 나또한 누나를 사랑하는 마음과 누나가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은 보내지는 않았으니까.

 

누나! 그러고 보니 누나가 떠났다는 충격에 당황하는 시간들이 어느 사이에 일주일이 지나버렸네. 오늘은 누나에게 처음 편지를 보내던 시절이 떠올라서 펜을 들었어. 한동안 무관심하던 누나에게 편지를 쓰려니 누나라는 부르는 것조차 염치없는 고개가 떨어지네. 하지만 누나가 염치없는 동생의 편지에 섭섭했던 마음을 풀어야지 어쩌겠어.


누나! 누나가 어디를 가든 못난 동생이 함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줘. 사실은 그 부탁을 하려고 펜을 들었는데 두서없는 이야기가 길어지고 말았네. 하지만 누나! 누나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남겨놓으려는 동생의 욕심이니 이해하고 보았으면 좋겠다.

 

누나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새벽에 못난 동생이 누나에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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