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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정 소설가
한국근로문화예술인협회의 정기행사를 갑사 유스호텔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우리협회의 고문이신 신태식 근로복지공단 충청지역 본부장님의 후원으로 실시하는 행사에 박규채 교수님이 함께하여 주신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협회는 물론 나로서도 그것보다 고맙고 반가운 일이 없었기에 얼마나 좋았는지 화들짝 놀라서 벌어지는 입술이 다물지도 못하고 싱글거렸다.
내가 어릴 때부터 안방극장에서 우상으로 보았던 탤런트.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국민배우로 칭송받는 박규채 교수님의 호는 범농(凡農). 무지한 나는 그분이 문화방송 탤런트 실장, 문화진흥위원회 회장, 배재대학교 교수, 한남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시는 것은 물론 근로복지공단 홍보대사로 활동하신다는 것을 행사장에서 만나 뵙고서야 알았다.
이번 행사는 우리들의 협회지 '문화의 숲' 제2호 출간기념을 겸하는 행사였다. 협회의 산실이나 다름없는 근로복지공단은 물론 대전지역에서 적잖은 유지 분들이 우리들을 격려하겠다고 참석하셨다. 개회 선언과 내빈소개가 끝나고 진행되는 '문화의 숲' 출간기념식에서 단상으로 올라서시는 교수님이 전혀 뜻밖에도 나의 자작시 '풋사랑'을 낭송하셨다.
내가 처음으로 문예지에 발표한 3편의 시 중에 하나가 풋사랑이었다. 그런데 황송하게도 교수님이 낭송하여 주시는 풋사랑을 감상하면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발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번에 출간하는 문화의 숲 제2호의 주간으로 고생하였다고 교수님에게 자작시 낭송을 배려해주는 임원들이 고맙기도 했다.
교수님은 '풋사랑'의 낭송이 끝나면서 교수님의 자작시 '금강산'을 낭송하셨다. 나는 교수님의 낭송을 감상하고서야 누구에게나 시인으로 존경받는 문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무지를 탓하기도 했다. 행사가 끝나고서야 마주앉은 교수님은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오히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시는 겸손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을 받기도 했다.
한동안이나 적잖은 덕담의 가르침을 주시는 교수님은 1962년 KBS 탤런트로 시작해서 40여년 각종 드라마에 출연했던 국민배우, 사회복지에도 남다른 관심으로 국내 최초로 노인학교를 설립하시고 서울대방종합사회복지관장을 역임하셨다. 지금은 칠순의 연세에도 젊은이 못지않게 사회활동으로 수고하시는 교수님의 성품을 본받겠다고 다짐하지만 쉽지가 않을 것 같다는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교수님의 덕담을 들으면서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는 배려가 궁금해졌다. 결국에는 차츰 더해지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좋은 일이니까."라고 대답하셨다. 무엇이 좋은 일이냐고 여쭈었더니 "우리 모두가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교수님이 아버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소꿉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로서는 누구보다 뜻있고 보람 있는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교수님의 말씀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좋은 일이니까. 지금에서야 곰곰이 생각해보니 좋은 일이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자그마한 것에도 나누어 주는 미덕과 하찮은 일에도 적잖은 관심으로 사랑하는 배려가 또한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사리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하찮은 무관심과 부질없는 이기심, 그것이 또한 정신수양이 부족한 나의 부덕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가르침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