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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녘에서 돌아보는 회상.
이규정(李揆貞)
올해도 어느 사이에 들어서는 9월에는 다양한 행사가 많기도 하다. 지난 세월호의 사고 때문에 미루었던 행사가 제법이나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행사가 많아도 참석하기란 쉽지가 않다. 주야로 근무하는 직장에 쫓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말에서야 쫓아가는 행사에 참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쉽지가 않은 것은 주말에도 교대로 근무하는 직장의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이 참석하는 문학행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제법이나 따가운 저녁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승용차를 멈추면서 휘둘러보는 들판에서는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곡식들이 출렁거렸다. 황금빛 물드는 들판을 바라만 보아도 아랫배가 불러지는 풍요의 계절이 가을이다. 인심이 또한 어느 때보다 후해진다는 가을이 어느 사이에 성큼 거리고 다가서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에서도 주야로 근무하는 직장생활에 쫓기다보니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이 언제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참석하는 문학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목에서야 황금빛으로 물드는 들판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다. 가을바람에 손짓하듯이 산들거리는 코스모스가 또한 제법이나 아름다웠다. 춤추듯이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가 정겹게 느껴지는 길목에서 나도 모르게 스쳐가는 추억들이 아른거렸다. 지나온 삶의 순간들이 한순간의 꿈결처럼 스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동안 살아온 삶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곧바로 사라질 듯이 아른거리는 추억들이 아쉽기만 하다. 아무리 아쉬워도 되돌리지 못하는 세월의 추억들이다. 세월보다 빠른 것이 없다더니, 나도 어느 사이에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누구도 막아서지 못하는 세월을 탓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짓이다. 만물에 영장이라는 사람도 자연의 순연을 거스르지 못하는 생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사계절을 살아가면서 한해를 보내는 우리나라는 이른 봄에 움트는 새싹이 한여름에 자라서 가을에 영글어간다. 내 삶이 또한 어느 사이에 오곡이 영글어가는 가을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가을에는 영글어 갈 것이 없다. 그동안 열심히 살겠다고 노력했지만 남아있는 것은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고작이다. 어쩌다가 빈 쭉정이가 남아있는 삶을 살았는지, 그동안 살아온 삶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과거가 없는 오늘이 없고 오늘이 없는 미래가 없다. 잠시도 멈추지 않는 시간에 오늘이 과거로 흘러가고 미래의 내일이 다가서는 것이다. 한순간의 꿈결처럼 스쳐가는 삶에도 후회스러운 일들이 많기도 하다. 앞으로의 삶을 바라보는 것 또한 순탄하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후회스러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삶이 또한 어둡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무엇을 얻는 것이 아름다운 삶만이 아니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 또한 아름다운 삶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한순간의 꿈결처럼 스쳐가는 추억에 젖어들었다. 저녁노을이 발갛게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다가서는 승용차에 주저앉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승용차에서 생각하니, 지천명을 넘기는 나이가 되어서도 가끔은 하찮은 욕심으로 방황하기도 하다. 아직도 하찮은 욕심을 버릇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하찮은 욕심을 버리겠다는 다짐하지만 하찮은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아서 걱정스런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가을 들녘에서 돌아보는 회상에서는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그동안 빈 쭉정이가 남아있는 삶에서도 애틋하게 느껴지는 추억들이 아쉽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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