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스님을 만나고 돌아와서

 

선명스님을 만나고 돌아와서.             서울에 살던 조카가 승려가 되겠다고 사라진지도 어느 사이에 10년이 훌쩍 넘었다. 사촌형님이 외동딸인 조카가 결혼할 나이에 승려가 되겠다고 떠났다는 소식에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먹고 살기에 바쁘다보니 어느 사이에 슬그머니 잊어버리는 조카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몰랐다. 명절이나 친척들의 애경사에서 만나는 사촌들에게 승려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이다.         어머니를 보내고 처음으로 맞는 추석날 쫓아가는 선산에서였다. 성묘를 하고서야 둘러앉은 자리에서 사촌형님이 조카딸의 이야기를 하셨다. 칠곡 가산에 있는 대둔사에 갔더니 선명스님이 어머니의 명복을 빌어주는 불공을 드리더라는 것이다. 나는 조카딸이 선명스님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나도 모르게 울컥해지는 앞가슴을 두드리면서 시큼해지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나는 까맣게 잊고 살았던 어머님의 명복을 빌어주는 불공을 드린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때문이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선명스님이 고맙다는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가능한 빨리 선명스님을 찾아가서 고맙다는 인사라도 건네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장생활에 쫓기다보니 쉽지가 않았다. 어느 사이에 한 달이 훌쩍 지나고서야 선명스님을 만나겠다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야 전화를 했더니 화들짝 놀라는 선명스님이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그동안 아무런 소식도 없던 당숙이 만나겠다고 쫓아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명스님이 수양하는 곳은 칠곡군 가산에 있는 대둔사였다. 청주에서 아무리 빨리 달려도 서너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10시에 출발했지만 대둔사에 도착해서는 오후 1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산사에서는 버릇처럼 쫓아가는 법당에서 부처님께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법당을 나서면서야 화들짝 반기는 조카가 낯설게 느껴졌다. 어린 모습만 기억하던 조카가 승복을 걸치고 반기는 선명스님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떠들썩하게 반기는 인사가 한동안이나 멈추지 않았다.         나는 어쩌다 쫓아가는 절에서 부처님을 뵙기도 한다. 하지만 불교에 무지한 사람이라서 스님을 어떻게 예우하고 어떻게 인사는 것조차 모른다. 10년이 훌쩍 넘어서도록 잊고 살았던 조카가 스님이 되었지만 나이어린 조카로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선명스님은 나이어린 조카가 아니었다. 하찮은 풀조차도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르고 생각하는 느낌이 달랐다. 잠깐 동안의 대화에서도 나이가 한참이나 많은 내가 배우는 것이 많기도 했다. 어린 조카로 보았던 선명스님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안타까운 한숨이 멈추지 않는 것은 당숙이라는 핏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당숙이 온다고 점심준비를 했다는 선명스님이 점심을 차려주었다. 손수 농사를 만들었다는 반찬들이 제법이나 맛깔스러웠다.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도 다정하게 주고받는 이야기가 멈추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서 끓여주는 차가 또한 제법이나 구수한 양기가 풍기는 차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제법이나 멀어서 슬그머니 일어섰더니 아쉽다는 한숨을 몰아쉬는 선명스님이 적잖은 책을 건네주었다. 반기듯이 받아들면서 부끄러워지는 얼굴이 나도 모르게 화끈거리고 달아올랐다. 당숙이라는 내가 처음으로 찾아가는 선명스님에게 아무것도 준비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동안이나 아쉽다는 인사를 건네고서야 돌아서는 대둔사에서 안타까운 한숨이 몰아쉬었다. 어린 조카를 내버리고 돌아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둔사를 나서면서 나도 모르게 힐끔거리고 돌아보는 고개가 선명스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명스님이 또한 대둔사를 빠져나오는 승용차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지 못하고 내달리는 승용차에서 생각해도 어린 조카로 느껴지는 선명스님이 아쉽다는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어둑한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꿈속에 만난 듯이 아른거리는 선명스님이 안타깝다는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누구라도 스님으로 살아간 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한적한 산사에서 수양한다는 것 또한 적잖은 고행의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사이에 늙어가는 당숙이 반가우면서도 안쓰럽게 생각하던 선명스님이 어른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어린 조카로 느껴지는 선명스님을 가끔이라도 찾아가서 좋은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한동안이나 멈추지 않았다.